[인더스트리뉴스 박현우 기자] 서울의 한 대형병원 복도. 바퀴가 달린 흰색 로봇이 간호사들 사이를 유연하게 비켜가며 약품을 운반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에서는 로봇 수십대가 클린룸을 오가며 웨이퍼를 이송한다. 이천의 물류센터도 마찬가지다. 다수 로봇이 쉴 새 없이 상품을 피킹하고 분류한다.

" height="802" loading="lazy
AMR(자율주행로봇, Autonomous Mobile Robot)이 한국 산업 현장의 새로운 일꾼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로봇들의 공통점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변을 인식하고 최적의 경로를 찾아 이동한다는 것이다.

AMR(자율주행로봇, Autonomous Mobile Robot)이 한국 산업 현장의 새로운 일꾼으로 자리잡아 가는 모양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세계 AMR 시장은 2025년 22억5000만달러에서 2030년 45억6000만 달러로 연평균 15.1%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인력난이 심각해 AMR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본지가 최근 스마트팩토리 구현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AMR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고도화된 AMR, 스스로 판단해 경로 결정

AMR을 이해하려면 먼저 AGV(무인운반차, Automated Guided Vehicle)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1950년대 처음 등장한 AGV는 바닥에 설치된 자기테이프나 와이어를 따라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운반 장치다.

외관상으로는 AMR과 차이가 없다. 핵심은 사전에 경로가 정해져 있느냐에 있다. AMR은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 기술을 기반으로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경로를 결정한다.

AGV가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라면, AMR은 도로를 자유롭게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AMR은 처음 투입된 공간을 스스로 매핑(지도 생성)하고,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며, 목적지까지 최적 경로를 계산한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즉각 우회 경로를 찾고, 사람이 지나가면 멈추거나 비켜간다. 그만큼 물류나 생산공정에서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고도화된 AMR의 이면에는 다양한 센서기술의 발전이 있다.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는 레이저를 360도로 발사해 주변 환경을 3차원으로 스캔한다.

초당 수십만개의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를 생성해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낸다.

카메라는 색상과 텍스처를 인식하고, 표지판이나 사람의 제스처까지 파악할 수 있다.

초음파 센서와 ToF(Time of Flight) 센서는 근접 장애물을 감지하는데 활용된다.

" height="343" loading="lazy
AGV가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라면, AMR은 도로를 자유롭게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다양한 센서들은 ‘멀티센서 퓨전’ 기술로 융합된다. LiDAR의 정밀함과 카메라의 풍부한 정보, 초음파의 근접 감지 능력을 결합해, 더욱 안정적이고 정확한 인식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실내 자율주행로봇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클로봇이 최근 공개한 ‘카멜레온 v3.0’으로 카메라 기반으로 LiDAR의 한계를 극복했다.

클로봇 관계자는 “LiDAR는 유리나 거울 같은 반 사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카메라 비전으로 이를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또 급격하게 발전한 AI 알고리즘도 AMR의 똑똑한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

딥러닝 기반의 객체 인식 기술로 사람, 팔레트, 선반 등을 구분하고 강화학습을 통해 최적 경로를 학습한다.

경로 계획(Path Planning) 알고리즘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최단 경로를 계산한다.

아울러 플릿 매니지먼트(Fleet Management) 시스템은 여러 대의 AMR을 통합 관리한다.

중앙 관제 시스템이 각 로봇의 위치와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작업을 할당하며, 교통 정리를 한다.

마치 공항의 관제탑이 항공기들의 이착륙을 조율하는 것처럼, 수십대 AMR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정한다.

산업 현장 실질적 변화 이끌어

단순한 운반 도구 역할을 하던 AMR은 기술의 발전속에 산업별 특성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물류창고에서는 상품 피킹과 분류를 담당하고, 제조 현장에서는 부품을 공급하며, 병원에서는 의약품과 검체를 운반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AMR이 기존 인프라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도입이 간편하다는 뜻이다.

기존 AGV만 해도 바닥에 자기 테이프를 깔거나 천장에 반사판을 설치해야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설정만으로 즉시 새로운 경로 운행이 가능하다”면서, “유연한 생산 환경을 구현할 수 있어 다품종 소량생산 등 변하고 있는 제조 트렌드에 최적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AMR이 기존 인프라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br>" height="257" loading="lazy
주목할 점은 AMR이 기존 인프라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제약 물류 분야에서 AMR의 활약이 돋보인다. 제약 물류 환경은 통상 2만5000여 품목을 다뤄, 정확성이 생명이다.

자율주행로봇 솔루션을 제공하는 에이엠알랩스가 D제약사에 공급한 AMR은 1g 미만의 오차로 약품 무게를 측정해 구분한다.

에이엠알랩스 박승 대표는 “좁은 랙 간격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며, 당일 배송을 위한 신속한 피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조 생산 물류 현장에도 적용이 늘고 있다. AMR은 필요한 부품을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로 운반해 재고를 최소화하고 생산 효율을 높인다.

AI 기반 로봇 자동화 솔루션 전문기업 시스콘로보틱스가 개발한 MPR(모바일 피킹 로봇, Mobile Picking Robot)은 소형 부품 피킹과 500kg급 대형 랙 이송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제조 현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AMR 도입 가속화, 이유는?

산업 내 도입이 늘고 있는 AMR의 가장 큰 동력은 현장에서의 인력난이다.

물류·제조 현장의 3D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AMR은 인력 부족 문제의 현실적 대안이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AMR 2대가 작업자 1명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단순 대체를 넘어 인간과 협업으로까지 적용 폭이 넓어지고 있다. AMR이 단순 반복 업무를 담당하고, 작업자들은 더 가치 있는 업무에 집중하는 식이다.

안전성도 향상되며 정치사회적 이슈와도 맞물렸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업 내 안전 이슈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AMR 도입 현장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다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 지게차 사고 등이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 AMR 기업들은 ISO 13849, IEC 61508 등 국제 안전 규격을 준수하며, 비상 정지 버튼, 범퍼 센서, 경광등 등 다양한 안전 장치를 기본으로 갖춰 나가고 있다.

RaaS(Robot as a Service) 모델의 확산도 AMR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로봇을 구매하는 대신 월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독 방식으로, 초기 투자 부담을 크게 줄였다.

중견중소기업들로 AMR 시장의 하방전개가 가속화될 수 있는 주요 이유다.

시장 환경, 정치사회적 이슈 등 다방면에서 AMR 시장의 급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AMR 시장의 급성장은 최종적으로는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인력난과 생산성이라는 산업계의 오래된 숙제를 풀어내는 동시에, 자율제조라는 미래 비전의 현실화가 눈앞에 있다.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하는 AMR이 만드는 ‘무인 공장’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FA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